2008년 06월 19일
끄적이는 거 - 2
"맞선?"
여자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아침이라는 것 때문 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맞선이라니....목소리가 뭐? .... 아, 그래. 철야했어. 아침? 아침은 아직...."
고급 가죽 의자에 앚아 있던 여자는 천천히 일어나, 넓은 오피스의 한 벽 전체를 차지하는 유리창으로 걸어가, 몸을 기댔다. 아침햇살 때문인지는 몰라도, 혹은 하이힐과 각에 잰 듯한 정장 때문인 지는 몰라도, 여자는 대단히 날씬하고 날렵해 보였다. 흐트러짐없이 찰랑 거리는 긴 금발과 충혈조차 되어 있지 않은 큰 눈이, 철야 했다는 그녀의 말을 무색하게 하고 있었다.
".....잠깐, 말 돌리지 마. 조용히 좀 해."
하지만 창 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차가웠다.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뉴욕의 고층빌딩의 숲은,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광경중에서도 삼엄하게만 보였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그 광경을 내려다 보는 그녀의 얼굴도, 덩달아 삼엄해 보였다.
"맞선은 무슨 소리야? 말해 두겠는데, 또 장난 치면 가만 안 놔둬......한국에 있으니까 상관 없다고? 너, 내가 천년 만년 한국에 안 들어 갈 줄 알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폭발같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오는 새된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여자는 무표정으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이런 통화에 대단히 익숙한 모습이었다.
"제발 부탁이니까 가만히 좀 있어.......뭘 그렇게 잘못 했냐고? 너 전에 소개한 남자, 다 늙어가는 중 늙은이 였다는 거기억 안나?........그래, 나 나이 많으니까 신경 좀 꺼 달라니까? 안 그래도 애들 문제 때문에 정신 없는데..."
말을 이어가던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침울한 감정을 섞어 갔다. 하지만 수화기를 타고 오는 소리는,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지, 그 볼륨을 줄이지 않았다.
"......아무튼 나가기 싫어. 이만 끊자......뭐, 벌써 약속 잡았다고?"
이번에는 낭패감이 섞였다.
"....너 진짜 이럴래? 왜 멋대로 굴어? ..... 뭐, 신세? 고마워 하라고? 뭘 고마워 하라는 거야 대체....응?"
또박또박 말하던 여자의 음성이, 갑자기 멈췄다. 너무 넓어 휑하기 까지 한 오피스를, 전화기의 소음만이 갑작스럽게 채우기 시작했다. 여자는, 소음에 가까운 통화음을 들으며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흠, 그래?"
그리고, 긴 침묵 끝에 대답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확실히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그래? 호오...그렇단 말이지? 흠.....그래...그렇다면...."
아무래도, 처음의 불쾌감이 지금의 호기심으로 희석된 듯 했다.
".......흠.....그래....그래? 흠...........좋아. 네 장난에 놀아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긴 하지만, 알았어. 한번 나가주지."
수첩을 정장 포켓에서 꺼내들며, 갑자기 증폭하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얼굴을 찌푸리며, 여자는 말을 이어갔다.
"시간은? 7시? 너무 늦지 않나? .........어, 거기에 예약했어? 별 다섯개짜리잖아? .........흠. 그래. 그럼 돈은 남자쪽에서 내는 거겠지? 응? 그야 그런 레스토랑에서 내돈 내면 아깝잖아."
입고 있는 수트는 디자이너의 핸드 메이드면서도 그렇게 대답한 여자는, 수첩에 시간과 장소를 적어 넣으며 말했다.
"알았어. 간다니까. 걱정하지마. 그래. 그럼 다음에....응. 조만간 한국에 들어갈게. 응 그래."
핸드폰을 끊고, 잠시동안 되찾은 정적 속에서, 그녀는 삭막한 고층빌딩들을 내려다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 어쩔 수 없나."
짧은 상념 끝에 무언가를 결정 한 듯, 그녀는 핸드폰과 수첩을 포켓에 집어넣으며 그녀의 데스크로 다가갔다. 반듯하게 정리된 물품들과 서류 중, 그녀가 손을 가져 간 것은, 약간 둔탁하게 생긴 인컴이었다.
"로렌."
단추를 누르며 말한 그녀의 말에, 잠시간의 침묵 후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네, 사장님.]
"오늘 스케쥴은 전부 취소시켜."
[네? 9시부터 임원단 회의가 있는데요.]
"취소해. 돌머리들이 물렁해 질 때까지 생각한 다음에 회의에 오라고 전하고."
[........네, 알겠습니다. 차 대기 시킬까요?]
"그래. 집에 갈거야."
[네, 알겠습니다.]
...........언제 꼐속될까염?(............)
# by | 2008/06/19 13:36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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